불판

김지태 이장님의 어머니 황필순 씨가 쓴 탄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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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돕헤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댓글 조회5,944회 작성일2006-06-2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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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께
 
  저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이장 김지태의 어미되는 황필순입니다. 올해로 일흔여덟이고요.
 
  판사님은 지난 6월 5일 스스로 출두하였던 제 아들을 구속할 것인가, 불구속으로 석방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난 6월 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을 때 한없이 울었습니다. 내 아들이 한 일이 그렇게 구속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들 김지태에 대해서 판사님이 판단하실 때 참고하실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이 귀하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지태는 제게는 특별한 아들입니다.
 
  뇌염으로 남매를 잃은 끝에 얻은 자식이라 더 없이 소중한 자식으로 키웠습니다. 지금껏 저는 내 자식이지만 욕 한 번 안 했고, 매 한 번 안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정미소 집이 제일 잘 살았는데, 그 집에서도 아이들 원기소를 먹이지 않았지만 저는 지태에게 원기소를 사 먹였고, 밥 한 번을 차려 주더라도 꼭 밥상에 차려 주었지 방바닥에 그대로 준 적이 없습니다.
 
  큰 아들도 있고, 지태 동생들도 있지만 다른 애들과는 달리 지태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고, 어떤 일이어도 맘에 들게 해냈기 때문에 예쁜 구석만 있지 눈에 나는 구석은 지태가 나이 50이 다 되도록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는 마당에 지태는 대학을 나오고도 부모 모시며 농사짓겠다며 고향 마을에 돌아와 가정을 일구고 동네 어른들한테나 젊은 후배들에게나 신망을 받는 농사꾼으로 살아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제가 데모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면 집에 와 머물다가 가고는 했는데, 지금은 데모 선생이 되었습니다. 내 아들 지태는 이 땅을 일군 어르신들의 뜻을 저버릴 수 없고, 이장이 주민들이 싸우자는데 안 싸울 수가 있냐 고는 했습니다. 주민들의 뜻을 하늘로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아들입니다.
 
 
  50살이 되도록 눈 밖에 난 적이 한 번도 없어
 
  재판정에서도 자신이 나오고 싶으면 세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자신이 한 일이 처벌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 아들은 여전히 당당했습니다. 재판장에서 우리 아들은 전혀 반성하는 기미 없이 국가 안보 할 거라면서 동두천에 있는 군인들을 왜 빼는 거냐, 미군 1만 2,800명을 감축한다는데 왜 미군 기지를 확장 하냐고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그러니 봐 줄 것도 안 봐주게 생겼다고 우리 할아버지는 걱정이었는데, 이 어미의 눈에는 그것보다도 그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포승줄로 묶이고, 또 수갑 차고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이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땅을 지키겠다고 저 마음은 내 아들의 뜻만이 아닙니다. 여기서 떠난 사람들도 사실은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데 마지못해서 떠난 것입니다.
 
  제가 사는 대추리는 기막힌 역사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오늘의 대추리나 도두리 마을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추리는 팽성읍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마을보다도 단합이 잘 되고 인심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요즘 농촌 마을은 어디를 가나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대추리는 이번 미군기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더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평생을 미군기지 때문에 고생을 하였고, 미군기지 옆에 살면서 헬기와 비행기 소음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물까지 미군기지에서 끌어다 써서 물마저 먹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미군기지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눈엣 가시 가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미군기지를 더 넓혀서 미군을 준다고 하니 이 노인네가 미칠 노릇입니다.
 
 
  "주민들에게 미군기지는 눈엣 가시입니다"
 
  판사님,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마을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이번에 미군기지 확정 터로 잡혀 있는 285만평 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들어보셨나요?
 
  지금의 K-6라는 미군기지가 있는 곳이 우리 애 아빠가 살던 원 대추리입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제국 말기에 일본 놈들이 강제로 쫓아내어 마을을 파괴했습니다.
 
  일본 놈들이 비행장 활주로를 만든 그 옆에 다시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전쟁 때인 1.4 후퇴 때에는 한밤중에 미군들이 불도저를 밀고 들어와 사람 사는 집을 밀어버렸습니다. 세간 살이 하나 건지지도 못하고 맨손으로 쫓겨나야 했던 그 겨울 쫓겨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나요?
 
  겨울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던 거기에 땅굴 같은 움막집에서 도저히 사람의 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두더지 같이 오로지 살기 위해,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근근이 하루하루 연명했던 그 비참했던 시절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판사님, 보세요
 
  이 마을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겼던지, 해동이 채 되기도 전에 버려졌던 대추리 앞 바다 갯벌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라고 먼저 시작할 것도 없이, 그 갯벌에서 언제 벼 한 포기 심어 나락을 걷을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때에도 세간 하나 없던 사람들이 맨손으로 삽 하나, 쟁기 하나 갖고 갯벌을 메우기 시작했죠.
 
  어떤 집은 그 갯벌을 메우는 일에 몰두하느라 아이를 집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가 나중에 가서 보니 그 아이가 죽어 있었던 기막힌 일도 있었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그 와중에 잃은 집도 여럿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하고 나니 그제야 갯벌에서 조금씩 벼가 자라나고, 보리가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막힌 사연을 모르고는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왜 그 땅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농민들이야 땅에 씨 뿌리고, 그 땅에서 벼가 자라고, 보리가 자라게 하느라 애지중지 자식 키우는 것처럼 여름날 땡볕에도 논을 돌아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게 이 동네 농민입니다. 이 땅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얘기야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입니다.
 
 
  "우리 아들은 이 동네의 일꾼. 타지에서 출세한 아들 부럽지 않아"
 
  제 아들 지태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 밥 주고,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논에 가서 물꼬보고, 마을 청소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늦잠을 자는 적이 없었습니다. 초여름에는 날이 새기 전부터 논으로 가서 모를 심고, 가을에는 새벽 2-3시까지 콤바인으로 추수 작업을 했습니다. 농한기에도 항상 바빴습니다. 논에 깔린 볏짚을 묶는 작업을 12월 말까지 하고, 1,2월에는 이장으로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 연말 정산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리 서기를 6년 한 다음에 이장 일을 보면서 10년 넘게 마을일을 도맡아 해온 이 동네의 일꾼입니다.
 
  저는 우리 아들을 생각하면 타지에 나가 출세한 이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두 아이 잃고 4남매를 농사일을 하며 키워서 남부럽지 않게 결혼시켜서 살게 한 우리 늙은이들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있습니까? 손주 녀석들 재롱 보며 이 땅에서 살 때까지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데 이 소박한 마음마저 짓밟으려 하는 것에 이 동네 노인들이 이장인 지태를 중심으로 같이 싸우는 것은 한 마음입니다.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동네 어른들 뜻을 좇아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을 시작했던 그 아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오히려 주민들의 뜻은 한 번도 묻지도 않고, 계획이 다 세워졌다며 어느 날 갑자기 얼마를 보상해주겠다며 몰아내려는 정부가 잘못이죠.
 
  그리고 주민 대표인 김지태가 대화에 나오라고 해놓고는 자진 출두하니 덜컥 구속시키는 것은 도리에도 어긋나는 짓이 아닙니까? 법을 갖고 사람을 우롱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입니다.
 
  우리 서방님은 올해로 일흔 여덟인데,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시조 경창 대회도 나가고는 하던 그런대로 멋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들과 함께 데모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동네 늙은이나 젊은 애들이나 데모로 내모는 것은 정부가 아닙니까? 어느 누가 제 살던 땅을 미군기지로 순순히 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런대로 멋있는' 우리 서방님도 아들과 함께 데모에 앞장서"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나라가 하는 일이니 따라야 하는가 싶었는데, 점점 정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게 되니까 이런 식으로 이 땅을 절대 내줄 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지 어떻게 평생을 미군들에게 시달리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다시 미군의 전쟁기지로 땅을 빼앗으려 듭니까. 그리고 이 소중한 땅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키겠다는 사람을 수배시키더니 구속까지 시킵니까.
 
  판사님, 이 늙은 것의 원망은 끝이 없습니다. 글 쓰는 게 힘들어 젊은이에게 대필을 시켜서 하는 말인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아들 무뚝뚝하고 조용한 편이지만 속이 깊은 사람이고, 자신이 옳다고 맘먹은 것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공부 잘 하라고 한 번 한 적 없고, 고등하교 다니는 둘째 아이랑은 아직도 뽀뽀하고 뒹글곤 하는 자상한 아빠입니다.
 
  우리 지태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도망만 다니지 않고 스스로 경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던 것입니다. 지태는 불구속이 되더라도 재판정에 나가서 주민들을 대신해서 당당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믿지, 어디를 도망 다닌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구차한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제 아들은 지금 B형 간염을 앓고 있습니다. 두 달마다 초음파, 피검사, 간암 검사 등의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수배 중이라서 5월에는 검진을 못 받았습니다.
 
  경찰서에 있을 때 며느리가 채혈을 해서 피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바이러스 균이 높은 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간 경화에서 간암으로 병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시급한 상태입니다. 지금도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으나 어미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판사님, 문정현 신부님이 청와대 앞에서 오늘로 15일째 제 아들을 석방시키라면서 단식농성 중입니다.
 
  몸도 안 좋은 그 신부님은 제 아들이 석방될 때까지는 단식을 풀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 가족들은 그런 신부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지난 번 6월 16일에는 이곳 주민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 올라가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말하는게 구차하지만, 아들은 심각한 B형 간염 앓고 있어"
 
  퇴임 후에는 조용히 농촌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는 그 대통령이 왜 우리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땅을 지키며 농사짓겠다는 아들을 구속시키는지 너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판사님, 제발 우리 아들을 두 아이들과 며느리, 그리고 이 늙은이들 곁으로 돌려주십시오. 불구속인 상태에서도 충분히 재판은 진행될 것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충실하게 재판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아들을 의지하고 있는 이곳 주민들 곁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저렇게 깡패처럼 군대를 풀어서 우리 농토를 파괴하는 짓을 저질러도 그래도 아직 정의는 살아 있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판사님의 바른 판단을 간절히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이 늙은이의 호소를 읽어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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