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투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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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돕헤드 이름으로 검색 댓글댓글 4건 조회22,001회 작성일2006-12-22 20:07본문
대추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전에 서둘러 서울에 올라왔다.
>김지태 이장님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고, 살인과 고문, 투옥, 납치 등을 견디며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와하까 민중들에게 한국 민중들이 힘찬 연대를 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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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멕시코 대사관 앞에서 오후 2시가 약간 넘은 시각 기자회견을 가장한 항의행동을 시작했다.
>색색깔의 피켓과 붉은색 펼침막이 외국 대사관들로 들어찬 한남동 고개를 수놓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니 콘크리트로 굳어버린 육체에 새로 빨간피가 도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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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이해 급하게 조직된 행동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와하까 민중들에 대한 일종의 미안한 감정 같은 것들을 씻어내고, 앞으로 더욱 굳건하게 국경을 넘어선 풀뿌리 민중들의 연대 활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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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을 불판으로' 팀도 왔다.
>멋진 스페인 어 구호가 적힌 피켓들도 들고 왔다.
>불판팀 한 명은 "국가폭력을 넘어서 자치꼬뮨을 일궈 나가는 대추리와 와하까의 민중들이 손을 잡고 혁명으로 나아가자"고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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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발언과 항의는 계속 이어졌다.
>와하까 민중들의 투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독립미디어 활동이다.
>따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와하까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서는 마침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시위를 하던 김에 방송국으로 몰려가 그곳을 장악해버린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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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일 그렇게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방송국으로 갑시다. 거길 점령합시다'고 외쳤을 때 그들은 '그래, 맞아. 바로 거기로 가자'고 하면서 그렇게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미디어 활동가들의 교육을 받으며 자신들의 고된 이야기를 당당하게 담아내게 된다.
>독립미디어 활동의 존재의의와 자립적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감동적인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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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한국의 광주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대검을 꽂은 총을 들고 시민들을 무차별로 학살하고 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을 비판하며 광주의 민중항쟁이 정당하다고 말을 해주었더라면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군부악마들이 그렇게 발광을 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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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추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해외에서 사람들이 이 조그만 마을로 찾아올 때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큰 힘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2006년 한국의 민중들이 모인 것이다.
>경계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투쟁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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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멕시코 대사관은 세콤과 경찰병력의 보호를 받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비호 속에 가진자들은 FTA를 추진해 절대 다수의 민중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 멕시코 와하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1994년 시작된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간에 맺은 FTA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치아파스 주에 근거지를 마련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서부터 아닌가.
>그리고 이제 투쟁은 와하까 주 전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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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대로 우리의 미래가 이윤의 이름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와하까의 민중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내일은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의 민중들이 연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의 양심적 민중들이 멕시코 정부에 보내는 항의서한을 낭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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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행동이 끝난 후 우리가 함께 낭독한 항의서한은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한국지부 활동가(바로 위 EZLN 티셔츠를 입은 사람)가 직접 멕시코 대사관 참사관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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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 민중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정의와 평화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투쟁 역시 계속될 것이다.
>김지태 이장님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고, 살인과 고문, 투옥, 납치 등을 견디며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와하까 민중들에게 한국 민중들이 힘찬 연대를 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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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멕시코 대사관 앞에서 오후 2시가 약간 넘은 시각 기자회견을 가장한 항의행동을 시작했다.
>색색깔의 피켓과 붉은색 펼침막이 외국 대사관들로 들어찬 한남동 고개를 수놓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니 콘크리트로 굳어버린 육체에 새로 빨간피가 도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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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이해 급하게 조직된 행동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와하까 민중들에 대한 일종의 미안한 감정 같은 것들을 씻어내고, 앞으로 더욱 굳건하게 국경을 넘어선 풀뿌리 민중들의 연대 활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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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을 불판으로' 팀도 왔다.
>멋진 스페인 어 구호가 적힌 피켓들도 들고 왔다.
>불판팀 한 명은 "국가폭력을 넘어서 자치꼬뮨을 일궈 나가는 대추리와 와하까의 민중들이 손을 잡고 혁명으로 나아가자"고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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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탄발언과 항의는 계속 이어졌다.
>와하까 민중들의 투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독립미디어 활동이다.
>따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와하까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서는 마침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시위를 하던 김에 방송국으로 몰려가 그곳을 장악해버린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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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일 그렇게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방송국으로 갑시다. 거길 점령합시다'고 외쳤을 때 그들은 '그래, 맞아. 바로 거기로 가자'고 하면서 그렇게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미디어 활동가들의 교육을 받으며 자신들의 고된 이야기를 당당하게 담아내게 된다.
>독립미디어 활동의 존재의의와 자립적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감동적인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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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한국의 광주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대검을 꽂은 총을 들고 시민들을 무차별로 학살하고 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을 비판하며 광주의 민중항쟁이 정당하다고 말을 해주었더라면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군부악마들이 그렇게 발광을 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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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추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해외에서 사람들이 이 조그만 마을로 찾아올 때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큰 힘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2006년 한국의 민중들이 모인 것이다.
>경계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투쟁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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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멕시코 대사관은 세콤과 경찰병력의 보호를 받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비호 속에 가진자들은 FTA를 추진해 절대 다수의 민중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 멕시코 와하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1994년 시작된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간에 맺은 FTA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치아파스 주에 근거지를 마련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서부터 아닌가.
>그리고 이제 투쟁은 와하까 주 전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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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대로 우리의 미래가 이윤의 이름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와하까의 민중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내일은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의 민중들이 연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의 양심적 민중들이 멕시코 정부에 보내는 항의서한을 낭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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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행동이 끝난 후 우리가 함께 낭독한 항의서한은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한국지부 활동가(바로 위 EZLN 티셔츠를 입은 사람)가 직접 멕시코 대사관 참사관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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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까 민중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정의와 평화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투쟁 역시 계속될 것이다.
ㅇㅎㅁ님의 댓글
ㅇㅎㅁ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사빠티스따 한국지부 활동가 중 맹렬한 저항활동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스칼렛씨도 항의서한 전달에 참여했다. 그는 비록 el puelp unido j'ama sera vencido 가 무슨 뜻인지 몰랐을지라도, 휴가 중인 멕시코 대사를 대신한 참사에게 와하까 민중의 투쟁에 연대할 것임을 당당히 밝혀 대사관을 숙연한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후에 그는 토마토- 마늘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며 자신의 투쟁성뿐만 아니라 요리솜씨도 뽐냈다.